주님, 지난 주일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길가에 나서 햇살을 마주하려는 순간, 어디선가 썩은내가 진동하였습니다. 주변을 돌아보니, 언제 죽었는지 알수없는 쥐가 길 한 가운데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. 순간, 이 시체를 보자마자, 이 쓰레기는 무엇인데 내 앞에 놓여있나 경멸하며, 누군가 치울 것이겠지 모른 체하며,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는 레위인 마냥 제 갈 길을 갔더랬습니다. 십자가 위의 주님, 이 사순, 혹여 제가 당신의 십자가 그렇게 모른 척 하며 지나가고 있지 않은지요.주님, 유스 아이들과 함께 맥도날드에서 적은 인원이지만 즐겁게 줄을 서서 북적대며 시끌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. 그런데, 단 한 명의 히스패닉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, '아시안들이 너무 많으니 낯설다'는 뉘앙스의 말을 했습니다. 그 순간, 언제부턴가 고독과 소외는 나만 경험하고 있다 생각하고 내 것인양 생각하고 있었는데, 그 것이 아니라는 것을, 깨닫게 되었습니다. 십자가 위의 주님, 이 사순, 혹여 저 때문에 홀로 되셔서 슬퍼하고 계시지 않으신지요.
주님, 월요일은 미국 내 이민농업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연대와 비폭력운동을 했던 세자르 차베스의 날이었습니다. 그가 "그래, 할 수 있다"라는 구호를 자신있게 외친 것처럼, 저도 이 땅 가운데 고통받는 자들에게 이 말을 자신있게 외칠 수 있을까요. 십자가 위의 주님, 이 사순, 언제부터인가 제가 전전긍긍하며 돌무덤 앞을 지키는 로마병정 신세처럼 되어 당신의 다시오심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.
주님, 이 죄인, 긍휼히 여겨주십시오. 긍휼을 간구하는 이 마음마저도 간교하여 아뢰기 부끄럽습니다.
GTU 조내연